젠더를 의미 있게 만들기 – 캐서린 크로스

밤의 마녀들 펀딩 도중에 발견하고 번역한 기사입니다. 지나간 글을 찾기 어려운 펀딩 업데이트 페이지에만 두기가 아까워 여기 올립니다.

젠더를 의미 있게 만들기:
테이블톱 RPG 밤의 마녀들에서 배울 점들

Making gender matter: Lessons from tabletop RPG Night Witches

캐서린 크로스  Katherine Cross

비디오 게임의 젠더를 다양화하라는 요구는 많지만,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골판지를 잘라 만든 스테레오타입 중에서 여성 캐릭터를 고르는 것을 피하고 싶다는 점, 그리고 젠더가 이야기에 영향이 전혀 없게 하면 잃는 것이 있다는 점이 충돌한다는 것이다. 후자는 “가슴 달린 남자” 등의 안타까운 용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양쪽 모두 페미니스트 비평의 결과물이다. 나는 후자에 대한 비판을 그다지 지지하지 않지만 (많은 경우 그런 요구는 현실의 인간 여성이 충족할 수 없는 플라톤적 이데아 여성을 그려야 한다는 일종의 교조주의에 빠지곤 한다), 그 비평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다. 캐릭터들을 스테레오타입에 집어 넣지 않고서 어떻게 젠더를 유의미하고 흥미롭게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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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모닝스타와 불리 펄핏 게임스는 새로운 아포칼립스 월드 시스템 테이블톱 RPG 밤의 마녀들로 여기에 답의 일부를 내 놓았다. 플레이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소련 제588 야간폭격연대 여성들을 플레이한다.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RPG의 펀딩에 참가했다. 밤의 마녀들은 “역사적 정확성”을 내세우는 게임들이 거의 하지 않는 바로 그것을 하는 게임이다. 모닝스타와 동료 작가들은 실제 역사에서 여성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해냈다. “역사적 정확성”이라는 명분은 이미 만연한 여성과 유색인종의 배제를 정당화하는 핑계로 너무 자주 사용된다. 실제 역사에는 비백인, 비남성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실화와 신화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게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도 하다.

밤의 마녀들이 플레이어들에게 여성성을 부풀린 값싼 스테레오타입을 강요했다면 그것도 다 쓸모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포칼립스 월드 엔진을 멋지게 활용하여, 번뜩이는 창의적 자극을 가해 플레이어들의 상상력이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RPG가 가장 잘 하는 바로 그것이다. 이 곳은 긴장이 팽팽한 정치적 환경이고, 철학과 젠더는 항상 전장 곁을 감돈다.

제588연대의 여성들은 나치들만이 아니라 남성이 지배하는 군대 조직과도, 그리고 이들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사회적 위계 질서와도 싸운다. 스탈린주의의 폭거는 병사들이 파시스트 적들과 싸우고 있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죽음의 시계를 들이댄다. 이 게임은 가차가 없다. 아포칼립스 월드 시스템을 사용하여, 여성 비행사의 지뢰밭 같은 삶을 생동감 있게 구현한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아포칼립스 월드 시스템은 모든 판정에 2d6을 사용하고, 그 결과에 몇몇 수정치를 가감한다. 합이 10 이상이면 하려던 일에 수월하게 성공한다. 7~9가 나오면 일이 재미있어진다. 성공은 하지만 뭔가 대가를 치르거나, 게임에 중대한 의미가 있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마스터와 플레이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정말로 재미가 있다.

내가 이번 주에 마스터링을 한 세션에서, 플레이어 한 명이 세라피마 소위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세라는 납득 못 할 이유로 비행 시험에서 낙제하자 교관에게 술을 먹이고 귀중품을 훔쳤다는 설정이 있었다. 캠페인이 시작되었을 때, 제588연대는 상부의 편애를 받고 물자도 더 많이 받는 제218연대의 남자 비행사들과 기지를 같이 쓰고 있었다. 세라는 218연대에 사샤라는 옛 친구가 있었다. 둘은 각자의 동성애를 감추어 주며 NKVD의 감시와 숙청을 피해 왔다. 세라는 사샤에게 부탁해서, 588연대에 부족한 폭탄을 218연대의 창고에서 가져오려고 했다. 사샤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는지 보기 위해, 세라에게 주사위를 굴리라고 했다.

9가 나왔다.

세라와 사샤가 빈 창고에서 만난 것은 세라의 옛 비행 교관이었다. 세라를 보고 화가 잔뜩 난 것은 물론이지만, 이 사람은 사샤의 새 애인이기도 했다. 그 하나의 판정에서 온갖 드라마가 다 나와, 네 시간짜리 플레이의 골조가 되어 주었다. 편이 갈리고, 서로 고자질할 재료가 마련되고, 섹스와 성차별과 호모포비아 (즉 젠더 이슈)가 등장했다. 이 모든 것이 기지에서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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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에서 젠더는 플레이어가 따라야 할 룰로서 등장한다. 액션들 상당수가 근본적으로 젠더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 액션들은 주변의 성차별을 여성들 스스로가 이용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프레이밍이다. 여자 비행사가 자기 기록에서 사상적 오점을 지우기 위해 NKVD 장교와 잤다면, 이는 교활한 팜므 파탈이 남자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 수단으로 묘사된다. 이 프레이밍에는 관점의 변화가 동반된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남성의 공포에서 여성의 현실로 철학적 카메라가 옮아가는 것이다.

여자가 성을 교활하게 이용하여 상대를 조종하는 것으로 묘사될 만한 곳에서, 밤의 마녀들은 여러 액션들을 통해 이를 삶의 현실로 만들어 준다. 제588연대의 여성 개개인은 연대 자체와 같은 처지에 있다.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고, 생존을 위해서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최대한 창의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젠더 표현을 다루는 것 또한 플레이의 일부이고, 룰로 잘 표현되어 있다. “남자처럼”이라는 간단한 이름의 액션이 있다. “남자처럼 행동해서” 원하는 것을 얻는 도박적인 액션이다. 그러나 이러다가 실패하면 징표가 찍힌다. 징표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카운트다운이다. 젠더 표준을 깰 때의 위험을 나타내는 좋은 수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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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마녀들은 그 시대와 그 장소에 뿌리박은 이야기이다. 그곳은 매우 성차별적이고 억압적이다. 스탈린주의는 이상화되지도 않고 이야기에서 무시되지도 않는다. 588연대의 여성들은 동시에 여러 전선에서 싸운다. 적군만이 아니라 조국의 사상 자체가 적이다. 적은 전장만이 아니라 병영에도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적 악몽 속에서 전시를 살아가는 편집증과 줄타기도 배경의 일부다. 그러나 이 억압의 파노라마는 성차별적 묘사의 핑계로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성차별과 호모포비아는 그 자체가 각각 캐릭터가 된다.

성차별이나 호모포비아는 바꿀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호흡할 수만 있고 손쓸 도리가 없는 세상의 법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이 두 가지는 캐릭터들이 문제로 삼고 가지고 노는 소재가 된다. 그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을 스테레오타입으로 묘사하기 위한 단순하고 경직된 언어로서가 아니라, 긴장과 이야기와 캐릭터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도약대로 사용된다. 성차별과 호모포비아와 싸우는 것, 적어도 이를 우회하는 것은 밤의 마녀들의 일부다.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이런 것들이 단지 “암울한” 배경으로만, 어떻게 바꿀 수 없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만 표현된다.

그것이야말로 “성차별적 묘사”와 “성차별의 묘사”의 차이다.

사회 시스템은 여러분의 플레이에서도 캐릭터가 될 수 있다. 변화시킬 수도 있고, 상호작용할 수도 있고, 도전할 수도 있고, 가지고 놀 수도 있다. 밤의 마녀들에서는 사회 시스템들이 캐릭터의 선택을 물들인다. 내 플레이에서는 중요한 면담에서 조종사에게 추파를 던진 NKVD 대령이, 자기가 몇 달 동안 수리해 온 비행기의 조종사와 사랑에 빠진 정비사가, 자기들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의심을 피하려고 애인 시늉을 하는 사샤와 세라가, 그리고 혁명에 몰두하여 부대 내의 “동성연애자”들을 모두 고자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젊은 사회주의 광신도가, 사회 시스템의 반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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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저명한 사회학자 피터 L. 버거는 사회학이 가진 관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꼭두각시 인형과 달리, 우리는 움직이다가 멈춰 서서 우리를 움직인 기계를 바라보고 살필 수 있다. 이 행동이야말로 자유로 가는 첫 걸음이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에게 이 자유를 주는 것이야말로 편견과 스테레오타입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젠더에 의미를 부여하는 첫 걸음일 것이다. 캐릭터들에게 자기가 사는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는 장치들을 발견할 기회를 주어 보라. 그 뒤에 일어날 일은 놀랄 만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캐서린 크로스는 온라인에서의 반사회적 행태를 연구하는 사회학 박사 과정 학생이자, 여러 문헌에 기고하고 있는 게임 비평가입니다.

이 글은 2015년 6월 26일 Gamasutra에 실린 캐서린 크로스 (Katherine Cross)의 “Making gender matter: Lessons from tabletop RPG Night Witches”의 번역입니다. 번역 게재를 흔쾌히 허락해 주신 캐서린 크로스 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원문 링크: http://www.gamasutra.com/view/news/247168/Making_gender_matter_Lessons_from_tabletop_RPG_Night_Witches.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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